근 1년 동안 저희는 디자인 결과물을 공유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디자인은 개인의 감정보단 목표에 충실한 과정이죠. 그래서 디자이너의 주관적인 감상 보다는 니즈를 우선으로 작업하기에 디자인 과제물을 공유해온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기회가 적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브랜딩이 아닌 제 개인적인 작업과 키워드를 통해 제 관심사를 말하고자 합니다. 각각이 독립된 주제이자 하나된 맥락으로, 천천히 따라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가장 관심있는 건 감정입니다. 내 감정의 근간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향하는지가 언제나 궁금합니다. 내가 느끼는 것이 이 감정이 맞나? 무엇 때문에 이렇게 느끼는걸까?라는 질문은 언제나 꼬리를 뭅니다. 어느날 기쁘다가도 어느날은 슬프고 화나기도 하고, 우울함과 자기혐오에 부딪히며 살다 자신감을 가지기도합니다. 매 순간 감정의 이유를 되짚어 보지만 가끔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기도합니다. 자신을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런 감정들의 원인을 모두 알게되면 내 스스로가 온전히 이해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마 평생을 쫓아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감정은 마치 결핍과 보상의 관계처럼, 행복과 불행의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며 균형을 이루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영원한 행복도 없듯이 영원한 슬픔도 없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무한히 순환하기에 역설적으로 인간의 감정은 영원한 형태로,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제 이름이 싫어요. 아니 싫다기 보단 저를 완벽하게 드러내는 단어가 아닌 것 같아요. '준수'라는 이름은 마치 언제나 근면성실해야하고 단어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사실 그렇게 살고 있지만, 왠지 이제는 그렇게 살고싶지 않아졌습니다. 그래서 새 계정을 만들 때나 닉네임이 필요할 때면 항상 이름을 짓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물론 그렇게 시간을 써가며 만든 새 이름도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이름을 짓고 사용하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며 계산적인 행위로 느껴집니다. 각종 매체에서 '제 2의ㅡ', '포스트ㅡ' 라는 별칭으로 홍보하는 경우가 있는 것 처럼 이름은 단어만으로 특정한 이미지와 관념, 사상 같은 복합적인 것들을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효과적으로 자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는 것 처럼, 인류사에서 이름이 가진 상징성은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 불멸에 있습니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물리적인 신체가 아닌 명예의 영원함을 말합니다. 영원히 좋게 기억과 역사 속에 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부단히 애를 쓰며 살아가고, 그리고 자신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합니다. 이 끝없는 프로파간다 속에서 이름은 더 자극적인 형태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반대로 저는 지워지는 모습을 보고싶었어요. 해변에 쓴 글자가 파도에 쓸려 지워지는 모습을 볼때 미묘한 감정이 들듯이, 도로 위에 쓴 내 이름이 밟고 뭉개서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사라지는 이름을 바라보며 느꼈던 것은 일종의 해방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광장이라는 장소를 관심있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만든 넓게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그만큼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 넓은 공간을 개인의 수용 범위을 넘은 거대한 감정들로 가득 채워넣습니다. 집단적 규모의 감정들이 부딛히며 커다란 갈등을 만들기도하고 축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언택트의 시대에 놓여있습니다. 광장의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던 사람들은 멀어졌지만, 우리는 이렇게 온라인으로 모이고 수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편리한 기능으로 많은 것이 가능하나, 잃어버린 것도 많습니다. 우리는 등교의 감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학교 정문을 지나는 기분과 강의실의 소음, 지각하지 않기 위해 달려야하는 긴박함, 수업 사이에 다녀오는 매점의 만족감은 더이상 느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언택트 보다 더 멀어질 수 있을까요."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란 말이 있듯이 감정이란 모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경험들입니다. 하지만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는 한편, 넘겨집기 좋은 애매함까지 가지고있습니다. 우리는 공감할 순 있지만, 안타깝게도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같은 경험을 겪더라도 다르게 기억되고 해석될 것이고 결국 자신이 아닌 타인이기에 나타나는 고질적인 한계점에 부딛힙니다. 자신의 경험과 멀어질 수록 공감의 거리는 멀어지고 대상은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는 남이 됩니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의 죽음 보다 내 주변의 불편에 공감하듯이, 똑같이 아파도 내가 더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듯이 언제나 자신의 범위 안에서 감정은 극대화 됩니다. 이런 타인의 감정이란 많은 문제와 얽혀있습니다. 저는 요즘 너무나 쉽게 서로를 혐오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사촌이 땅을사면 배가 아프다지만,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고, 나의 불행에 타인은 즐거워하며, 성별와 세대, 계급간의 갈등, 온갖 신조어를 만들어가면서 서로를 공격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쉽게 배척합니다. 때론 익명뒤에 숨으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미지를 관리할 프로파간다가 필요가 없기에 손가락 타자 몇 번 만으로 쉽게 타인을 조롱하고 헐뜯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온갖 이유를 나열하며 변명을 하고, 합리화합니다. 대의라는 명목으로 포장된 말로 감정적인 것을 이성적인 것처럼, 그것이 올바른 것처럼 주장합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타인이기 때문이죠. 나에게 닿지 않을 타인이기 때문에. 타인이라는 개념은 어쩌면 언택트 시대보다 더 닿기 힘들고 좁힐 수 없는 거리입니다.

이런 시대에서 사랑이란 단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정말 존재할까요. 사랑이 성애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선한 마음이라고 했을때 진정한 인류애적인 마음이란 어디에 있을까요.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부조리, 악인마저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론적인 사랑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개인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사랑을 가진 사람도 없듯이, 완벽한 혐오만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똑같이 각자 자신만의 미숙하고 위선적인 사랑을 가집니다.

그래서 저는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비어버린 사랑의 글자를 들고 만질 수 없는 시대의 중심에서 소리없는 외침을 보내봅니다. 살짝 경쾌해보이는 듯한 모습으로. 마냥 밝진 않지만 밝아보이도록 꾸몄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순수하고 아름다운 단어로 기억되길 바라면서.

달콤한 환상 같은 사랑이라는 개념은 아름답지만 안타깝고, 행복하지만 슬프고 들고있기엔 너무나 버겁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설탕으로 남겼습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모두가 가지는 감정, 모두의 집에, 식탁에, 부엌에 가지고있는 설탕. 삶에 밀접하고 사람을 구성하는 양분이 되는 것은 사랑일까 설탕일까요.

그리고 제 이름처럼 그것을 관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모르게 밟기도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피해가기도합니다. 혹은 알더라도 일부러 밟아보기도하죠. 몇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고, 관심과 무관심 속에서 글자는 모든 접촉을 받아냅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에 글자의 형태는 무너져가고 흩어집니다. 설탕은 저 멀리 퍼져나갑니다. 사람들의 신발에 묻어서, 바람을 타고, 건너편으로, 건물로, 집으로. 설탕은 흩어져도 그 가루들이 설탕임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글자가 지워지더라도 사랑은 변질되지 않고 퍼져나갈 수 있을까요. 살면서 상처받고 사랑을 잃은 것처럼 느껴져도 아직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저는 작품의 이름을 '광장에서 집까지'로 지었습니다. 처음 가졌던 의문으로 돌아와. 감정의 근간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만들고 어디로 향할까요. 아니 질문을 바꿔서, 내 감정을 어디에 둬야 할까요. 내 감정으로 무엇을 만들고 먼길을 돌아 어디로 가야할까요. 무엇에 희망을 가지고 무엇에 좌절해야 할까요. 가루처럼 흩어지는 감정을 바라보는 올바른 태도는 무엇일까요. 모든 것은 하나의 질문으로 보다 많은 감정으로 여러분에게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발표 마치겠습니다. 졸업을 준비하는 1년동안 수고하셨고, 행복한 한 해 마무리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